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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뮤 대전: 호주에서 가장 특이한 전투(새와 인류의 싸움)

by soodream 202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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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전쟁이라고 하면 흔히 군인과 무기, 영토나 자원, 이념적 지배를 위한 전략적 전투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적"이 전혀 인간이 아닌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 역사상 가장 기괴한 갈등 중 하나는 국가 간이 아니라 인간과 날지 못하는 큰 새 무리인 에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1932년에 호주는 훗날 에뮤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유머러스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호주의 어려움, 농업 부문의 어려움, 그리고 때로는 국내 문제에 대한 군사 개입의 놀라운 결과도 있습니다.


배경: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 


에뮤 전쟁 이야기는 20세기 초 호주의 농업 산업이 어려움을 겪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호주 정부는 귀환한 군인들에게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광활하고 길들여지지 않은 땅에서 농사를 지을 것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곧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1929년에 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밀 가격이 급락했고, 새로 설립된 농민들은 심각한 재정적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밀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보조금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고, 이는 농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좌절과 절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습니다. 호주에 서식하는 크고 날지 못하는 새인 에뮤(Emus)는 가뭄으로 인해 자연 서식지가 점점 더 황폐해지면서 음식과 물을 찾아 내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호주(Western Australia)의 밀밭은 이 새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제공했고, 곧 수천 마리의 에뮤가 농지에 내려와 농작물을 짓밟고 농부들의 불행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농부들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정부는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특이한 군사작전 중 하나로 이어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투 시작: 기관총 대 에뮤


농부들의 간청에 따라 호주 정부는 에뮤 침입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군사 자원을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령 G.P.W. 1932년 11월에 시작된 작전은 호주 왕립 포병대의 메러디스가 맡았습니다. 두 개의 루이스 기관총과 10,000발의 탄약으로 무장한 메러디스와 그의 소규모 병력은 에뮤 개체수를 줄이고 밀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계획은 간단해 보였습니다. 기관총을 사용하여 에뮤를 대량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뮤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새의 속도와 민첩성은 표적을 만들기 어렵게 만들었고, 작은 무리로 흩어지는 경향이 있어 기관총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초기 교전은 깃털 달린 적들에게 금세 압도당하는 군인들에게 재앙이었습니다. 한 군인이 유명하게 말했듯이, 에뮤는 재빠르게 총격을 피하고 들판을 가로질러 날뛰는 것을 계속하면서 군대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복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뮤에 대한 군사 작전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지지하던 언론은 신문에 “에뮤가 군을 앞지르다”, “에뮤 1, 군 0” 같은 헤드라인을 내면서 정부의 행동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에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살해된 새의 수는 예상보다 훨씬 적었고, 결국 작전은 취소되었습니다.

 

여파: 교훈과 장기적인 영향


군사 작전이 실패하자 호주 정부는 에뮤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고해야 했습니다. 에뮤 대전은 공식적으로 인간의 패배로 끝났지만, 농부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에뮤 개체수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계속되었고 일부 농부들은 자신들의 땅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정부는 에뮤를 처리하기 위해 다른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군사력을 배치하는 대신 사냥꾼에게 현상금을 제공하여 에뮤 개체수를 통제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장려했습니다. 이 접근 방식은 훨씬 더 성공적인 것으로 입증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에뮤 수는 통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추가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선된 울타리 및 기타 보호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오늘날 에뮤 대전은 호주 역사에서 기발하고 다소 코믹한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문제에 군사적 해결책을 적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전쟁은 더 나은 계획, 더 효과적인 문제 해결 전략, 농업 및 환경 문제 관리와 관련된 복잡성에 대한 더 큰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결론


에뮤 대전은 종종 그 부조리함과 유머로 회자되지만, 현대에도 울려 퍼지는 귀중한 교훈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는 자연의 회복력, 야생동물의 예측 불가능성, 복잡한 생태계에 대한 인간 개입의 한계를 강조합니다. 에뮤 대전은 단지 군사적 실패의 이야기가 아니라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어려움, 서툴게 계획된 행동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 자연 세계와 공존하기 위한 인간의 지속적인 투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뮤 대전(Great Emu War)을 되돌아보면 역사상 이 특이한 장이 단지 재미있는 일화 그 이상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는 모든 노력에서 적응성, 사려 깊은 계획, 환경 존중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줍니다. 에뮤 전쟁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어떻게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사례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인간의 야망과 자연 세계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숙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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